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가 2026 아카데미(오스카)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포함한 6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난 이 영화가 작년에 본 영화 중 가장 인상적인 영화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특히 고속도로 장면의 긴장감은 지금도 생생하다다. 하지만 제시 버클리가 여우주연상 후보에도 오르지 못한 점은 좀 아쉬웠다.

영화 '원 배틀 어나더'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수상 전까지 '시너스: 죄인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사실 난 '시너스: 죄인들'이 작품상을 수상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지만, 작품상의 영예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에게 돌아갔다. '시너스: 죄인들'은 오스카 역사상 최다 후보인 16개 부문에 지명되며 화제를 모았지만 남우주연상, 각본상, 촬영상, 음악상 4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여기서 후보 지명(nomination)이란 최종 수상 전 각 부문별로 선정된 작품 또는 개인을 의미하는데 이는 아카데미 회원들의 투표를 통해 결정된다.
난 두 영화를 모두 극장에서 직접 봤는데 '시너스: 죄인들'의 촬영 기법도 정말 뛰어났다. 오스카도 이 사실을 인정했는지 오텀 듀랄드 아르카포는 여성이자 흑인 최초로 촬영상을 수상했다. 이는 영화계에서 다양성(diversity)이 얼마나 중요한 이슈인지 보여준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의 내러티브 구조가 더 설득력 있었다고 본다.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은 이번 시상식에서 감독상, 각색상, 작품상을 한꺼번에 수상하며 11번의 후보 지명 끝에 첫 승리를 거뒀다. 그는 수상 소감에서 "저는 제 아이들에게 우리가 제대로 치우지 못한 채 남긴 이 세상의 혼란에 대해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고자 이 영화를 썼습니다"라고 밝혔다(출처: Vanity Fair). 난 이 발언이 영화의 주제와 정확히 일치한다고 생각한다.
주요 수상 내역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작품상, 감독상, 각색상: 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 남우주연상: 마이클 B. 조던(시너스: 죄인들)
- 여우주연상: 제시 버클리(햄넷)
- 남우조연상: 션 펜(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 여우조연상: 에이미 매디건(웨폰스)
결말 해석 (1) 고속도로 장면, 혁명의 진짜 의미 *스포일러 포함
영화의 클라이맥스인 고속도로 장면에서 밥 퍼거슨(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은 마침내 딸 윌라(체이스 인피니티)를 찾아낸다. 내가 이 장면을 처음 봤을 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윌라가 아버지에게 총을 겨누며 암호를 요구하는 순간이었다. "그린 에이커스, 비벌리 힐빌리스, 후터빌 정션"이라는 대사는 1971년 길 스콧-헤론의 '스포큰 워드 피스(spoken word piece)'인 '혁명은 중계되지 않을 것이다'에서 나온 패스워드다.
여기서 스포큰 워드란 음악보다는 시를 낭독하는 형태의 공연 예술을 말하며, 1960~70년대 미국 흑인 민권 운동과 깊은 연관이 있다. 영화는 이 역사적 맥락을 현대의 저항 운동과 자연스럽게 연결한다.
이 장면이 내게 특히 강렬하게 다가왔던 이유는 윌라의 변화 때문이다. 영화 초반 그녀는 평범한 10대 소녀로, 친구들과 학교 댄스파티에 가는 것만을 원했다. 하지만 스티브 록조 대령(숀 펜)이 고등학교에 중무장한 경찰을 보낸 후, 윌라는 강제로 성장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솔직히 이 전개는 예상 밖이었는데, 한 사람이 외부 폭력으로 인해 얼마나 빨리 변할 수 있는지 너무나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반면 밥은 영화 내내 패스워드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무능한 모습을 보인다. 내 경험상 이런 아버지 캐릭터가 오히려 더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완벽한 혁명가보다는 세상을 바꾸고 싶지만 일상생활도 제대로 못하는 평범한 사람이 더 공감 가니까 말이다.
결말 해석 (2) 인종주의 비판 *스포일러 포함
록조 대령의 마지막 장면은 영화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는 윌라가 자신의 생물학적 딸임에도 불구하고, 흑인 여성인 퍼피다 비벌리 힐스(테야나 테일러)와의 관계를 부정하며 "역강 간당했다"라고 주장한다. 백인 우월주의 비밀 결사인 크리스마스 어드벤처러스 클럽은 그의 변명을 받아들이는 척하며 그를 입회시킨다.
하지만 록조가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가스가 방 안을 채우고, 그는 결국 마지막 순간에 죽임을 당한다. 내가 이 장면을 보며 느낀 건, 시스템적 인종주의(systemic racism)의 냉혹함이었다. 시스템적 인종주의란 개인의 편견이 아닌 사회 제도와 구조 자체에 내재된 차별을 의미하며, 영화는 이를 비밀 결사라는 상징으로 표현한다.
클럽은 록조의 육체적 능력이나 충성심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들에게 중요한 건 오직 권력과 순혈주의였고, 흑인 여성과 관계를 맺은 남자는 아무리 변명해도 용납될 수 없었다. 이 조직이 토마스 핀천의 1991년 소설 '바인랜드'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영화는 핀천의 포스트모던적 유머를 일부 차용하면서도, 군사화된 경찰과 백인 우월주의에 대해서는 훨씬 더 진지하게 접근한다.
일부 평론가들은 록조의 죽음이 카타르시스를 준다고 평가하지만, 난 오히려 불안감을 느꼈다. 클럽은 여전히 권력을 쥐고 있고, 무한한 자원을 가지고 있으며, 언제든 자기들끼리도 서슴없이 제거하는 조직이기 때문이다. 혁명은 끝나지 않았고, 전투는 계속된다는 영화의 메시지가 바로 이 장면에서 명확해진다.
결말 해석 (3) 사랑이 증오를 이긴다는 희망 *스포일러 포함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윌라는 아버지에게 총을 겨누며 패스워드를 요구한다. 이는 그녀가 어린 10대 소녀에서 숙련된 혁명가로 성장했음을 보여주는 장면다. 난 이 캐릭터 아크(character arc)가 정말 설득력 있게 그려졌다고 생각한다. 캐릭터 아크란 이야기 전개에 따라 등장인물의 내면이나 행동이 변화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이는 좋은 영화의 필수 요소다.
반면 밥은 계속 실수를 저지른다. 패스워드를 기억 못하고 휴대폰 사진도 제대로 못 찍는 전형적인 무능한 아빠다. 하지만 바로 이 점이 영화를 더 인간적으로 만든다. 테야나 테일러가 연기한 퍼피다는 영화 전반부에서는 폭발적이고 이기적인 전사였지만, 후반부에서는 후회와 그리움으로 가득 찬 모습으로 변한다.
퍼피다가 윌라에게 남긴 편지도 나에게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장면 중 하나다. 그녀는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싸우다가 정작 자신이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 잊어버렸다는 사실을 고백한다. 결국 가족과 친구를 버린 그녀가 좋은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자기 자신에게만은 솔직한 캐릭터였다. 베니치오 델 토로가 연기한 센세이 세르히오 세인트 카를로스의 "라티나 해리엇 터브먼 작전"도 공동체의 사랑을 보여주는 훌륭한 예시다(출처: Den of Geek).
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결국 여러 형태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아닐까?
- 아버지와 딸 사이의 사랑
- 딸과 부재한 어머니 사이의 잃어버린 사랑
- 공동체의 사랑
- 정의에 대한 사랑
이 모든 사랑이 혁명의 동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앤더슨 감독의 메시지다. 내 생각에 이 지점에서 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가 그저 정치 스릴러가 아니라는 점이 밝혀진다.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은 오스카 무대에서 "레오, 베니치오, 테야나, 션, 레지나, 그리고 특히 체이스—우리의 아메리칸 걸 체이스, 당신이 이 영화의 심장입니다"라고 말했다. 그의 표현에 공감한다. 영화는 거대한 시스템에 맞서는 개인들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그 개인들을 지탱하는 것은 결국 사랑이라는 진실을 담고 있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혁명이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일상에서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 시작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앞으로도 이렇게 오락성과 진정성을 모두 사로잡은 영화가 더 많이 나오길 바란다.
참고: https://www.vanityfair.com/hollywood/story/one-battle-after-another-beats-sinners-for-best-picture-at-oscars-2026, https://www.denofgeek.com/movies/one-battle-after-another-ending-explain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