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가 SF장르에서 성공하기 어렵다는 건 누구나 아는 얘기다. 그런데 '추격자', '황해', '곡성' 등을 히트시킨 나홍진 감독이 '랑종' 이후 수년만에 내놓는 신작 SF영화 '호프'가 프랑스 언론으로부터 칸영화제 경쟁부문 유력작으로 거론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사실 감독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외계인 이미지 보고는 솔직히 기대감이 살짝 떨어졌는데 제작 규모와 배우 라인업, 조금씩 뜨는 정보들을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칸영화제가 주목하는 한국 SF블록버스터
프랑스 주간지 '파리마치'는 최근 2026년 칸영화제 전망 기사에서 나홍진 감독의 SF영화 '호프'를 아시아 영화 중 유력한 경쟁부문 진출작으로 예측했다. 여기서 칸영화제 경쟁부문이란 황금종려상 수상을 겨루는 공식 경쟁작 섹션을 의미한다(출처: 칸영화제 공식사이트). 조엘 코엔, 테런스 맬릭 같은 거장들의 신작과 함께 거론됐다는 점에서 국제적 기대감을 가늠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한국 SF영화는 흥행 불모지라는 인식이 강하다. 실제로 국내 관객들이 SF장르에 보이는 반응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비교해 냉정한 편이었다. 하지만 내 경험상 나홍진 영화는 장르를 떠나 분위기 하나로 관객을 사로잡는 힘이 있다. '곡성' 보고 무서워서 잠도 제대로 못 잤던 기억이 생생한데, 그때 느낀 건 이 감독은 특유의 연출 톤으로 승부한다는 점이었다.
'호프'는 1970~80년대 비무장지대 인근 호포항을 배경으로 한다. 마을에 외부인이 나타나고 정체불명의 존재가 목격되면서 주민들이 사투를 벌이는 이야기다. 황정민, 조인성, 정호연 같은 국내 배우들이 등장하고, 마이클 패스벤더, 알리시아 비칸데르 같은 할리우드 배우들이 외계인 역할로 출연한다. 서양인이 외계인 역할을 맡았다는 설정 자체가 신선하고, 반공 정서가 짙던 시절 고립된 마을이라는 배경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파리마치'는 편집 과정이 쉽지 않다는 소문을 언급하며 조심스러운 반응도 보였습니다. 박찬욱 감독이 한국인 최초로 칸 심사위원장을 맡은 만큼 한국영화 초청에 어느 정도 베네핏이 있을 거라는 관측도 나온다.
700억대 제작비와 SF장르의 흥행 리스크
'호프'의 공식 제작비를 업계에서는 700억에서 1000억 사이로 추정하고 있다. 이는 국내 단일 영화 프로젝트 사상 최대 규모다. 여기서 손익분기점(BEP)이란 제작비와 마케팅비를 회수하는 최소 관객 수를 의미하는데요. 일반적으로 제작비의 2.5~3배 수익을 올려야 본전이라고 본다. 제작비 700억이라면 최소 천만 관객 이상은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현재 한국영화 제작비 1위는 '외계+인 2부'로 알려진 370억이고, '설국열차' 440억을 한국영화에 포함해도 '호프'가 1위다. 솔직히 이 정도 제작비면 흥행 부담이 엄청날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 SF영화가 대중적으로 성공한 사례가 거의 없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여기서 '파묘' 사례를 떠올리게 된다. 당시에는 개봉 전까지만 해도 오컬트 장르가 어떻게 흥하냐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는데 결과는 대박이었으니까. 장르 자체보다 감독의 연출력과 배우들의 연기, 그리고 입소문이 더 중요하다는 걸 '파묘'가 증명했다. '호프'도 나홍진이라는 이름값과 초호화 캐스팅이 있는 만큼 예단하기 어렵다.
제작 규모와 관련해 주목할 점은 다음과 같다:
- 국내 최대 규모 제작비로 할리우드급 시각효과 구현 가능
- 해외 배우 캐스팅으로 글로벌 배급 경쟁력 확보
- 70~80년대 시대 배경 재현을 위한 대규모 세트 투자
해남군과의 상생 가능성과 지역경제 효과
상반기 한국 영화 최고 기대작 나홍진 감독의 '호프'는 전라남도 해남군과 정식 협약을 맺고 한 마을을 통째로 세트장으로 개조해 촬영했다. 장소를 빌려준 것뿐만이 아니라 해남군이 영화 제작에 일종의 투자를 한 형태다. 시골길 전체를 70~80년대 풍으로 바꿔서 세트로 사용했다고 한다.
필름 투어리즘(Film Tourism)이라는 용어가 떠올랐다. 필름 투어리즘이란 영화나 드라마 촬영지를 방문하는 관광 형태를 말한다(출처: 한국관광공사). 영화 흥행이 지역 관광산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례는 이미 여러 차례 검증됐다. 천만 관객을 넘은 '왕과 사는 남자'와 영월 지역, 드라마 '겨울연가'와 남이섬처럼 콘텐츠와 지역이 함께 성장하는 구조다.
문제는 나홍진 감독의 영화 특성상 지역 이미지가 꼭 긍정적으로만 작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내 걱정이 바로 여기에 있다. 나홍진 감독의 최대 히트작 영화 '곡성'은 오히려 관광객들이 기피했다는 얘기가 나왔고, 결국 실제 촬영지가 곡성 아니라고 알렸던 경험이 있다. 공포스럽고 음산한 분위기가 지역 이미지에 독이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지.
'호프'도 SF스릴러 장르인 데다가 나홍진 감독의 기존 영화를 생각했을 때 밝고 긍정적인 분위기는 전혀 아닐 것 같다. 외계인이 나타나고 마을이 파괴될 위기에 놓인다는 설정 자체가 그렇다. 해남군이 투자까지 한 상황에서 영화가 흥행하더라도 관광객이 몰려들지 않거나 부정적 이미지가 생긴다면 서로 윈윈 하기 어려울 수 있다.
물론 반대 시나리오도 있다. '호프'가 '파묘'처럼 장르물로서 대중적 성공을 거두고, 세트장 자체가 독특한 볼거리로 인정받는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70~80년대 마을 풍경이 잘 보존된 세트라면 그 자체로 테마파크 같은 역할을 할 수도 있으니까. 난 해남군과 아무 관련도 없지만, 이왕 지역이 이렇게 크게 투자했으니까 영화 흥행 여부와 별개로 세트를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후속 계획을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고 본다.
올해 한국영화 최대 화제작인 영화 '호프'는 5월 칸영화제 초청 여부부터 관심이 집중된다. 나홍진 감독 특유의 연출력과 초호화 캐스팅, 그리고 국내 최대 제작비가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롭다. SF장르에 대한 편견을 깨고 한국영화가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을지, 그리고 해남군과 영화가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개인적으로는 나홍진이니까 일단 믿어보자는 쪽이다.
참고: https://www.chosun.com/entertainments/movie/2026/03/03/GNSTONLBGE4TMYJRGY2TKMTEGE/